호암 양창보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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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양창보 개인전
전시명 | 호암 양창보 개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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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제 | 바람의 섬과 붓끝 사이 |
전시장소 | B1F 제1전시장 |
전시기간 | 2025. 05. 23 - 2025. 06. 16 |
작가 | 호암 양창보 |
전시관 | 제주갤러리 |
전시회 설명
제주의 자연은 수천 년 동안 바람과 파도,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의해 빚어져 왔다. 호암(湖巖) 양창보(1937–2007)는 이 섬의 정수이자 본질을 화폭에 담아낸 ‘제주의 화가’였다. 이번 전시 《바람의 섬과 붓끝 사이》는 그의 예술을 통해 제주의 바람과 작가의 붓끝 사이에 오간 깊은 교감을 마주하게 한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 이 전시의 시작점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제주 갤러리 특별 기획인 ‘작고 작가 다시 보기’ 시리즈의 첫 번째이다. 지역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인 양창보를 새롭게 보는 자리이다.
양창보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두 살 무렵 제주로 이주한 뒤, 서울대 재학 시기를 제외하고는 평생을 이 섬에서 살아가며 제주의 풍경을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제주의 자연을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품의 소재로만 삼지 않았다. 그에게 자연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고, 인간은 그 안에 깃든 또 하나의 존재였다. 바람, 바다, 돌, 오름 등은 그의 붓 아래에서 시간과 이야기를 품은 새로운 대상으로 태어났다. 이는 예술가로서 존재와 삶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졌던 그의 내면의 기록이기도 하다.
전시는 작가의 《행로》(연대 미상)로 시작된다. 이 그림은 눈 덮인 길을 나무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노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단순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과 삶의 흐름 속에서 길을 찾는 예술가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노인의 발걸음은 곧 작가 자신이 걸어온 길이며, 제주의 자연과 교감하며 쌓아 올린 예술이기도 하다. 그는 제주의 자연을 따라 자신의 길을 찾았고, 붓을 통해 그 길 위에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새겨나갔다. 《행로》는 그러한 내면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제주의 중심인 한라산을 오름, 해안, 바위, 들판과 한 유기체처럼 연결하여 그의 작품 속에서 펼쳤다. 특히 그만의 필치와 다양한 시점의 구도는 제주의 거친 자연과 따뜻한 정서를 동시에 품어냈다. 그에게 제주의 바람은 단지 풍경의 요소가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정서이자 예술적 철학의 흐름이었다. 그의 붓끝을 따라 흐르는 바람은 곧 자연과 인간의 대화를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북군십경》(2003) 병풍 작품에 주목할 만하다. 지금은 사라진 행정명칭 ‘북군’을 중심으로, 제주의 북부 풍경과 도민들의 일상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려낸 대작이다. 해 뜨는 장면과 해지는 풍경, 들불을 놓는 사람들, 자연을 마주한 시선들이 병풍 위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이 작품은 풍경화인 동시에 ‘삶으로서의 제주’를 담아낸 서사물이자, 양창보가 바라본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제주는 급속한 개발과 변화 속에서 과거의 풍경과 정서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양창보의 작품은 원형에 가까운 자연과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소중한 기록이자 질문이다. 《북군십경》 속 들불을 놓는 사람들, 《행로》의 노인처럼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던 삶은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자연과 더불어 존재할 수 있을까? 예술은 그 잊힌 풍경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바람의 섬과 붓끝 사이≫는 과거를 회상하는 전시가 아니다. 작가의 그림을 통해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자연과 삶, 예술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는 자리다. 관람객 스스로 양창보의 그림 속 바람을 따라 걸으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의 예술은 여전히 바람 부는 섬 제주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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