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채원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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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설명
나의 시간이 곧 가족의 시간이었고, 그들의 하루가 어느새 나의 하루가 되었다. 서로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밥을 나누며, 마음을 건넨다. 그 평범한 일상들이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서로를 빚어주었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천천히 함께 성장해 왔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식구다(食口茶)’다. ‘식구’는 한 지붕 아래서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 삶을 나누는 가장 가까운 공동체를 뜻한다. 나는 여기에 ‘차 다(茶)’ 자를 더했다. 함께 차를 마신다는 것은 곧 마음을 나누는 일, 이 작업은 나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작고 조용한 헌사다.
전시에 선보이는 다기세트는 가족의 모습을 닮았다. 다관은 찻잎을 천천히 우려 따뜻한 영양을 품은 엄마 같고, 숙우는 그 우러난 차를 고르게 나누는 아빠 같으며, 찻잔들은 부모의 손을 거쳐 온기를 담아내는 아이들 같다. 크기와 깊이, 형태는 제 각각이 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따뜻한 차 한 잔이 완성되듯 가족의 온기도 그렇게 모인다.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품고,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삶도 달라진다고 믿는다. 좋은 것을 품고 바르게 나누는 일, 그 안에 부모로서의 태도와 책임이 담겨 있다.
함께 살아가는 반려묘 ‘봄이’와 ‘빵이’도 소중한 가족이다. 찻자리에 슬며시 다가와 조용히 자리를 잡는 그 작은 몸짓은, 말없이도 곁에 있음을 전해준다. 그들과 함께 나누는 고요한 순간들 속에,우리가 함께 보내는 소소한 일상의 장면을 담았다.
이번 작업에는 옥수수대 회분이라는 낯선 재료를 유약에 활용했다. 버려지는 식물성 부산물에서 회분을 얻고, 소성과 발색을 반복하며 실패와 실험을 거듭한 과정은 자연과 공예, 전통과 지속가능성을 잇는 조용한 실천이었다.
특히 ‘각 시리즈’는 면을 치고, 각을 세우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는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비워내며, 곧고 단정한 선을 남기는 일이기도 했다. 그 조용한 몰입의 시간은 오히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다듬어진 기물들은 나의 태도와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는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부모로서, 동반자로서,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 이 전시는 그 길 위에서 내가 얼마나 자라왔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이 다기세트는 우리가 함께 살아낸 시간과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릇이다.
이번 전시의 조용한 이야기들이 저마다 가슴 속에 품은 ‘식구’를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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